"내가 살고 싶던 삶이 그런 거였어요. 생활에 얽매어서 그렇게 못산 거죠." 다음날 나는 소설을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각처럼 잘 흐르지 않았고 자꾸 횡설수설했다.

내 생각들이 자꾸 튀어나와 줄거리를 자꾸 삼천포로 빠져들게 했다.

더구나 그가 내 얘기를 들으며 순간순간 놀라서 얘기를 중단시키고 질문을 하는 바람에 이야기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나 혼자 녹음해서 나중에 메일로 보내주기로 하고 그날은 그와 즐기는 데에만 몰입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지 막막했다.

한 이야기를 할라치면 꼬리를 물고 이런 기억 저런 기억들이 같이 딸려 나오며 까마득히 잊었던 일들이며 생각들이 중구난방으로 연결되어 횡설수설 어수선해져 버렸다.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 없이 혼자 말하고 있어도 마치 누군가가 끼어드는 것처럼 수많은 기억들과 생각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지, 순간순간 내 낡은 핸드폰이 꺼지는 바람에 가끔씩 멈추지 않았다면, 내 이야기는 끝까지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어딘가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나는 그의 속 이름을 비틀었다.

이 말자란 이름만 그대로 쓰고. 옆방에선가 어디에선가 내 원룸의 벽을 타고 발라드풍의 음악이 들여왔다.

이야기 속에 음악소리도 같이 녹음이 되고 있을 거 같았다.

나중에 녹음 한 것을 들어보니 아주 어렴풋이 음악 소리가 섞여 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아주 가늘고 미약해서 미리 알고 신경 써서 소리를 찾으려들지 않으면 모른 채로 놓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아라비아로 갈 거다" 마지막 말을 이렇게 끝내고 그에게 메일로 녹음을 보냈다.

나는 날마다 인터넷으로 사막여행투어를 뒤졌다.

여행 후기도 읽었다.

사막이라는 처음의 두려움은 차차 엷어지고 점점 용기가 생겼다.

이젠 당장 혼자 떠나도 자신 있을 것 같았다.

밤샘 일을 하며 여행자금을 모아갔다.

원룸도 곧 내놓기로 했다.

오! 길 떠나는 나그네에게 그 우리의 일생을 짓눌러버리는 그 무거운 집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내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보증금을 받으면 적어도 사막 정도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와 가면 좀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정 안되면 현지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가며 움직이면 될 것이다.

더구나 체구가 건장한 남자가 끼어 있다면 어디서도 나그네에게 그리 인색하지 않을 테니까. 밥 한 끼, 하룻밤 잠자리만큼이야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가난해도 족쇄가 되지 않고, 가난해도 흉이 되지 않을 거였다.

오히려 낭만이 될 수도 있었다.

고생에 관해 원망스럽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었다.

여행객에게 고생은 영원한 것이 아닌 잠시 머물다 가는 순간일 뿐이다.

내일을 향해 또 다른 여행을 위해 많은 것을 깨닫고 얻고 떠나는 교훈이다.

한 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족쇄가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이승에서의 인간이란 한 순간 머무는 나그네요, 삶의 길 또한 그저 머물다가는 여행길 아닌가. 그런데 굳이 북박혀 살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인생은 혼자 걸어가는 나그네의 여행이다.

그래도 동행 있다면 덜 힘들지 않을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여행을 그와 동행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둘이 간다면 이 여행이 훨씬 즐겁고 보람되며, 힘이 되고 도움이 될 거 같았다.

아니 그 안에 엄마도 있으니 셋이다.

먼저 아라비아 사막으로 갈 거다.

이 여행은 족쇄를 끊는 여행이었다.

설사 그 족쇄가 내 발목에서 빠지지 않은 채 그대로 매달려 있더라도, 내가 한 곳에 묶여있지 않고 어디로든 자유롭게, 마음껏, 발길을 옮기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면 그 족쇄는 이미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그는 내 녹음을 받고 거의 한달 만에 나타났다.

내 집을 들어서자마자 가방에서 스프링 철을 끼워 재본 한 노트를 꺼냈다.

읽어보라고 했다.

프린트로 뽑은 소설 원고였다.

"소설을 처음 써보는 거라 제대로 된 건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목을 아직 못 정했어요." 하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소년처럼 수줍은 웃음이 번졌다.

이미 중년임에도 나이답지 않게 그는 자주, 참 수줍음을 많이 탔다.

"제목을 뭐라고 해야 할지 그쪽이 한번 정해 보세요." 이제 내 이름은 그쪽이 아주 ‘그쪽’으로 굳어버렸다.

나는 종종 내 이름은 "김 그쪽입니다."하고 그에게 말했다.

자꾸 들으니 이 말도 좋았다.

그쪽이면 어떻고 저쪽이면 어떤가. "제목 정하는 게 글 쓰는 거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죠." 내가 대답했다.

나는 제본 노트를 천천히 넘기며 눈으로 대충 읽어나갔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