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해도 너무하네요. 이럴 거면 아예 운행하지 말아야지…."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던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경의중앙선 이촌역 승강장. 60대 남성 이 모 씨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불만을 터뜨렸다.

서울에 사는 딸 집을 찾아온 이 씨는 서울역에서 4호선을 타고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이촌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약 37도로 절정의 폭염 상태였고 이를 해소하리라 기대했던 소나기는 오히려 습도만 높일 뿐이었다.

승강장의 온도는 이날 최고기온보다 2도나 높은 39.2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높은 기온과 습도는 마치 한증막을 연상케 했고, 열차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무기력함과 짜증이 가득했다.

약 20여 분 뒤에야 도착한 열차에 탑승한 이 씨는 승강장에서 모든 체력을 소진한 것 같이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수도권 전철 가운데 특히 경의중앙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불만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차하는 역사 중 상당수가 지상에 위치한 것은 수도권 전철 모두 비슷하다.

외부로 노출된 승강장은 기온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선로 양옆에 있는 승강장은 눈과 비만 피할 수 있도록 유리창이 있는 벽과 천장 캐노피를 설치해 놓은 정도다.

이런 구조 탓에 냉방시설도 없다.

뜨거운 햇볕을 그대로 받는 데다가 바람도 잘 안 통해 승강장은 불쾌할 정도로 더웠다.

수도권 전철 이용 승객은 폭염이 더 괴롭다.

특히 경의중앙선 이용 승객의 불쾌지수가 더 높은 것은 한낮일수록 1시간에 두세 대에 불과한 배차간격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정해진 시간표라도 알 수 있지만 연로한 승객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경의중앙선의 경우엔 승객들이 그냥 역사에 도착해서 열차를 기다리는 게 대부분이다.

더구나 열차도 지연되기 일쑤다.

언제 올지 모르는 열차를 한증막 같은 승강장에서 기다리다보니 짜증이 치솟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강동화 교수는 경의중앙선 역사의 폭염에 대해 "일사와 높은 외부기온에 의해 열이 축적된 상태라 구조체에서 나오는 복사열로 인해 이용객의 불쾌감을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옥수역과 같이 지붕과 벽체로 갇힌 공간은 마치 온실처럼 실내로 유입된 일사열과 열차 자체가 내뿜는 열기, 이용객의 발열 등으로 인한 열이 역사 내에 고이게 된다"며 "창문을 개방 했지만 개방 면적이 적어 바람이 불지 않는 경우에는 이용객들이 역사 외부보다도 덥다고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도권 지하철과 환승역으로 이용객들이 많은 역을 중심으로 승강장 내부 온도를 측정한 결과, 실제 기온이 37도를 넘는 곳이 많았다.

심지어 10일 오후 2시쯤 상봉역 승강장의 경우엔 무려 기온이 40도를 넘었다.

경의중앙선 상봉역은 7호선, 경춘선과 ITX까지 갈아탈 수 있어 수도권 동북부의 교통 요지로 승객이 매우 붐비는 곳이다.

이런 더위에도 불구하고 승강장엔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만이 간혹 설치돼 있고 그마저도 없는 곳이 많았다.

경의중앙선 배차 간격은 매우 길기로 '악명' 높다.

열차 수도 적을뿐더러 배차 간격이 최대 25분에 달할 정도로 매우 긴 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구간은 ITX, 무궁화호, 경춘선 등 다른 철도와 선로를 같이 이용하는 탓에 지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이용객은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역시 지연되는 경우가 많지만, 배차 간격이 매우 촘촘한 편이다.경의중앙선은 잦은 지연에 배차 간격도 종잡을 수 없어 열차때문에 지각하는 일이 자주 있다"며 툭하면 지연되는 경의중앙선에 대해 "시간표가 존재하는 의미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장에서 지켜본 결과 전광판에 '25분 후 도착 예정'이라는 문구를 자주 목격할 수 있었고, 지연으로 인해 그보다 더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하행의 경우 '덕소행'과 '용문행' 두 열차가 번갈아 운행되는 탓에 덕소역을 지나 경기 남양주시 일부 지역과 양평군의 지역을 향하는 승객들은 30분 넘게 기다리는 게 흔했다.

승객들은 40도가 육박하는 찜통 속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열차를 20~30분씩 기다렸다.

더위에 지친 승객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 있고, 몇몇 이들은 너무 더워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며 에어컨 바람을 쐬거나 조금이나마 덜 더운 곳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다 도착 직전 이동했다.

경의중앙선의 혼잡도 역시 9호선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경기 구리시, 파주시와 같은 수도권 베드타운을 동서로 이으며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 용산, 왕십리 등 서울 시내 주요 지역을 지나가기 때문에 이용객이 매우 많은 편이다.

실제 코레일이 실시한 예전 조사에서 혼잡도가 최고 180%에까지 달하기도 했었다.

2호선, 5호선, 분당선과 환승이 돼 수도권 동부의 교통 요충지인 왕십리역의 경우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좁은 승강장에 몸을 부대끼고 서 있다.

특히 출퇴근길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물론 이런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승강장 냉방은 전혀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더운데 사람까지 많아 한증막 같은 더위와 땀 냄새가 섞여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실제로 취재기자가 왕십리역 경의중앙선 승강장을 찾은 지난 6일 오후엔 한 여성이 쓰러져 119 구조대원이 구출하는 위급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방학 중 고시반에서 공부하며 왕십리에서 경의중앙선 중랑역까지 통학하는 한 대학생은 "여름에 중앙선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차라리 돌아가더라도 가급적 다른 노선을 이용한다"며 "열차도 잘 안 오는 데다가 덥기까지 해서 집에서 먼 역에 내리더라도 거기서 걷거나 마을버스를 타는 게 낫다"고 말을 전했다.

코레일 측 한 관계자는 "경의중앙선의 승강장에 대형 선풍기를 배치하거나 냉수를 제공하는 등 긴급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상황 개선을 위해 천장형 또는 벽걸이형 대형 선풍기와 송풍기를 설치할 예정이고, 냉방이 가능한 '홈대합실'을 단계적으로 설치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폭염의 맹위가 무섭다.

무더위가 찾아오는 시기는 해가 갈수록 빨라지고, 그 강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이제 폭염은 재난이 됐다.

곧 찾아올 선선한 가을 바람에 '40도 승강장'을 잊어선 안 된다.

10개월 후, 다시 돌아올 무더위에는 시민들이 고통스럽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상황을 피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