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관 식
옆방에 남자가 들어왔다.

그건 하나의 사건이었다.

하루하루가 무미건조하여 변화 있는 삶에 눈길이 가다보니, 어쩌다가 명적암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

남들의 삶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무료해보이진 않았고 활기에 차있는 것 같았다.

혼자의 고립을, 혼자의 낯섦이 힘겨워 차라리 겉도는 일상을 더욱더 눌러주고 싶은 마음으로 택한 명적암에서 남자라니. 선영은 옆방의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속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자신을 쳐다보며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적암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참으로 부담스럽게 결론지어놓고 있었다.

주위사람들이 놓아준 소개팅 자리에서도 마지못해 나갔다가 더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헤어지기 일쑤였다.

딱히 할 말이 없다는 가장 큰 이유였다.

고정 레퍼토리인 취미와 가족관계와 최근에 본 영화, 알고 있는 맛 집, 왜 그 나이까지 직장도 구하지 않고 ‘신부수업’ 등등의 질문에 식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가령 저 강에 대하여, 저 산에 대하여, 저 바다에 대하여, 저 길에 대하여, 저 하늘에 대한 질문은 없을까. 저 숲에 대하여, 저 가로등에 대하여, 저 담장에 대하여, 저 꽃에 대한 질문은 왜 없을까. 항상 헤어지면서 그런 질문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졌다.

처음 만난 어색한 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을 방금 만난 사람의 얼굴이 가물 해질 시간에 깨닫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백마를 타고 오는 왕자를 선호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빛나는 아우라가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수더분하지만 생각도 깊이도 같은 채널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소개팅이 시들해졌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부담스러워졌다.

삶은 샘물이 솟아나듯 퐁퐁 활력으로 넘쳐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쯤 명적암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 달만이라도 삶에서 벗어나 있고 싶었다.

무엇이 중요하고 소중한가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고 싶었다.

그래야만 실체가 더 잘 보일 것 같았다.

화가도 자신의 그림 진도를 위해 붓놀림을 쉬고 한발 물러서서 지켜본다고 하지 않는가. 선영은 지금의 나태함이 즐거웠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 속에서 어쩌면 밀려났을지 모르지만, 자신 안에는 또 다른 치열함이 있다고 믿었다.

퍼즐을 맞춰 완성하기까지 첫 조각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에 잡히는 데로 퍼즐의 어느 부분을 꿰맞춰 완성을 시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영은 다시 귀를 기울여 풍경소리의 음색을 찾아내려고 했다.

산사를 숙연하게 만드는 음색에 접근하기위해 스스로 처마 끝 풍경이 되어보려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강이든 바다이든 헤엄쳐나가고 싶은 간절한 염원으로 선영의 몸은 곳곳에서 비늘이 돋고, 지느러미가 생겨나고 아가미가 턱관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산사를 벗어나 강물에 뛰어 들기엔 역부족이었다.

먼저 새가 되어 날아서 강물에 당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한 마리 새가 되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한낮의 햇살이 꽃 살 무늬 방문에 엉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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