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오늘은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군(1965.4.1.∼1987.1.14.· 84학번)이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다가 숨진 날. 수배 중이던 그의 선배 박종운(사회학과·1961∼)의 소재를 캐기 위해 그 전날 자정쯤 그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 분실로 불법연행.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 단순쇼크사망으로 몰고 가려했으나 석간 중앙일보(1월15일자 신성호기자 사회면 왼쪽 아래의 2단짜리 작은 기사)의 최초보도와 곧바로 동아일보기자들(남시욱 편집국장-정구종 사회부장-송석형 사회부차장-장병수 시경캡-정동우, 황호택, 윤상삼, 황열헌 기자·1월19일자엔 12면 중 5개 면을 박종철기사로 채웠다)의 끈질긴 추적으로 거짓이 드러났다.

이 중 황열헌 기자가 쓴 ‘철아 잘 가그래이, 아비는 할 말이 없대이!’는 온 국민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최초 검안의사와 부검의사, 영등포교도소 교도관들 그리고 학생들을 비롯한 의로운 시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마침내 그 해 6월 항쟁을 이뤄냈다.

다섯 달 동안 타는 목마름으로 타오른 민주주의 만세!! 그해 12월 오늘날의 헌법을 만들어냈고 ‘1987년 체제’가 닻을 올렸다.

박종철이 목숨으로 지켰던 선배 박종운은 2000년 16대부터 18대 총선 까지 세 번이나 한나라당후보로 부천 오정구에서 출마했다가 떨어졌고 그 후엔 우익매체 ‘미디어 펜’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열혈 사나이’ 윤상삼 동아일보기자는 1999년 간암으로 아깝게 눈을 감았고, 박종철은 경기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말없이 누워있다.

그렇다.

격동의 1987년, 폭압과 야만의 시대. 누구나 그 ‘개 같은 세상’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처자식 밥벌이’ 때문에 겁쟁이 소시민으로서 일정부분 ‘미필적 부역자’로 살았던 게 사실이었다.

‘대학생들을 잡아들이는 지휘관’이었던 서울지검 공안부장, 대학생들을 구금하고 감시해야만 했던 영등포교도소 교도관들, 의사들, 신문기자들, 신부님들 스님들, 넥타이부대들…. 그들 모두 ‘마음의 빚’이 있었다.

인간의 도리, 최소한의 상식, 직업의식, 부끄러움….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가’하는 자괴감. 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줄 아느냐, 그날 같은 건 결코 오지 않아! 영화 ‘1987’의 대사가 두고두고 가슴을 찌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나섰다가, 도리어 세상에 길들여졌던가. 하지만 중국작가 루쉰의 말처럼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아서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